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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기본적으로 나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시험 전에 시험공부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할 일은 어느 정도 하고 노력이라고 말할 만한 것을 조금은 한다. 아니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예를 들어서 이야기해보겠다.
만약 어떤 일이 있다고 생각하자. 그 일을 내가 그냥 한다면 그 결과는 30의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만약 내가 10의 노력을 한다면 40의 결과를 달성하고, 20의 노력을 한다면 50의 결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결과에 필요한 노력의 수치가 점점 이상한 비례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30의 노력을 한다면 55의 결과를 달성한다. 그리고 40의 노력을 달성하면 60의 결과를 달성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비율을 또 점점 작아져서, 60의 노력에는 53의 결과가, 70의 노력에는 56의 결과가 나온다.
이렇게 비율은 점점 낮아져서 90의 노력에는 그에 비한 노력보다 별 볼일 없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온 힘을 다한 100의 노력에는 그보다 더 결과가 어처구니 없어서, 1의 향상된 결과를 위해 100의 노력을 해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래서 나는 노력을 하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노력파의 결과와 그 끝은 충분이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결과에 비해서 그 노력에 들어가는 내 정신적 노동이 너무 어처구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1%를 가르는 라인은 그 1의 결과에 의해 차이나기도 한다. 가령 200의 노력을 기울여서 100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보다 1의 결과가 더 나온 사람이 비록 그 결과의 차이는 미비할지라도 100의 노력을 한 사람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1의 결과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고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린다.

그래서 나도 노력을 해보려 하지만, 그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 일이다. 100의 노력을 들여야만 1의 결과를 낼 수 있는데, 나는 대부분 90의 노력과 95의 노력에서 멈추고 만다. 그게 나로서는 한심스러운 일이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100의 노력으로 발버둥친다.
그 1의 결과를 위해.
by 로즈마리아 | 2007/06/20 12:05 | Rosemaria's 일상잡담 | 트랙백 | 덧글(3)
편견.
우리는 언제나 편견에 빠져산다.

어느 정도로 편견에 빠져사느냐하면, 이정도?

이 놈의 빌어먹을 편견은 사람을 존나게 귀찮게 한다. 한 사람을 바보만드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생매장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뒤에서 그저 조금 뒷다마만 까주면 그게 조금씩 번져서, 아주 죽일 놈으로 만드는 것도 순식간이다.

편견에 대한 해답?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에 편견은 없었을걸.
그저 우리는 편견에 의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씹혀야 하고, 편견을 가지고 또 누군가를 씹어야 한다. 그게 답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포스트를 올리는 이유가 뭐냐고?

나도 그런 편견에 지금 당하고 있고, 또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보는 이글러들이여. 아니 사람들이여. 제발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까지는 말자. 그 사람이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까일만한 행위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누가 아는가? 뒤에서 의외로 선한 행동을 할 지?

편견을 가지고 까지도 말고, 까이지도 말자.
by 로즈마리아 | 2007/06/15 00:41 | Rosemaria's 일상잡담 | 트랙백 | 덧글(0)
공동체, 그리고 내부분열에 의한 종말.

 우리는 언제나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그건 누구에게도 포함되는 전제이며 한국이던 미국이던 중국이든-중국은 땅넓이가 넓으니까 혼자 고독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다.

 이런 공동체의 장점은 서로간의 교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며 서로 동일한 의견을 주장했을 때 보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교대는 양자에게 즐거움을 주며 보다 힘찬 생활을 가능케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서로 도와가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이건 비록 사람들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물, 식물을 포함에 생물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공동체를 이루는 타 동물을 비롯해 균류 등 생물 전반에 걸쳐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이자 단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공동체 내부에서 의견이 도출했을 때 그 주장이 단 하나로 통합되면 별 문제가 야기되지 않지만, 서로의 의견이 다양하고 엇갈리기 시작할 때, 공동체는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이건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최악의 결과로 거의 모든 공동체-90퍼센트 이상에 걸겠다-가 이 문제로 파멸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내가 지금 군대에 있으니 군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A라는 사람이 있고 B라는 사람이 있다. A와 B는 동기라고 치자-이 둘 사이에 계급차이가 나도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의견도출이 가능하나, 군대라는 상황상 짬밥차이나면 어림없다. 동기정도는 되야 서로의 의견이 도출될 수 있다- 이 둘이 어느 주제에 대해 A는 a라는 의견을, B는 b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제 둘은 서로가 주장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면 어떻게 할까.

1. a라는 의견으로 수렴한다.

2. b라는 의견으로 수렴한다.

3. c라는 절충안을 내놓는다.

4. 때려친다.

적어도 이 4가지 중에 하나로 결정이 될 것이다-굳이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리진 않겠다. 나로서 지금 생각해낼 수 있는 의견은 4가지 정도가 한계다. 아무튼 이 4가지중에 하나는 결정될 것이다. 1, 2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이 100%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분명 한 사람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c라는 절충안과 때려치는 것도 어느 정도 답이 되기는 하나, 역시 그들이 본래에 내놓았던 a, b라는 의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항에는 불만사항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내에서의 분열은 서로를 힘들고 피곤하게 한다. 서로에게 피해가 가고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공동체내에 존재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기게 되고 공동체는 파열한다. 이것이 공동체가 내부 분열로 인해 끝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결과이다.

내 생각이 너무 극단적일 수도 있겠다. 나는 공동체 내부에 있는 것이 자신의 개성을 잃는 계기라고 생각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기본적인 원인제공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점점 개인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개인주의는 개개인이 잘못하지 않는 한 공동체처럼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니까.

by 로즈마리아 | 2007/06/09 08:58 | 트랙백 | 덧글(0)
담배.

담배[Tabacco]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  Nicotiana tabacum
분류  가지과
원산지  남아메리카 열대
크기  높이 1.5∼2m, 잎 길이 50cm 
 

본문
남아메리카 열대가 원산지이다.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온대 지방에서 재배할 때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가 1.5∼2m이다. 잎과 줄기에는 점액을 분비하는 선모(腺毛)가 빽빽이 있어 끈적끈적하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50cm이며 끝이 뾰족한 타원 모양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짧고 날개가 있으며 밑으로 흐른다.

꽃은 7∼8월에 피고 줄기 끝에 큰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작은꽃가지는 길이가 10∼35mm이다. 꽃받침은 원통 모양이고 길이가 작은꽃가지와 비슷하며 선모가 있고 갈라진 조각은 바소 모양이다.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고 통부의 길이가 7∼15mm이며 윗부분이 5개로 갈라지며 연한 붉은 색이다. 수술은 5개이고 밖으로 나오지 않거나 약간 나오며 씨방은 2칸으로 나뉜다.

열매는 삭과이고 달걀 모양이며 꽃받침으로 싸여 있고 많은 종자(1과에 약 2,000개)가 들어 있다. 종자는 짙은 갈색이고 둥근 모양이다. 한방에서 담배의 잎을 연초(烟草)라는 약재로 쓰는데, 소화 불량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쓰고, 종기·악창·옴·버짐에는 환부에 붙여 치료하며, 개나 뱀에 물린 데도 효과가 있다.
 



왜 이런 포스트를 올리냐 하면, 바로 내가 흡연자기 때문이다.
담배는 정말 피울 게 못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피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한심해 보여서 참을 수가 없다.

담배의 쓴 맛을 안다는 건, 인생의 쓴 맛을 안다는 것이다.

 -로즈마리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담배라는 건 좋지 않달까. 아무튼 그렇다. 내가 군대와서 가장 않좋은 습관을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흡연이다. 물론 흡연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정신이 또렷이 차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담배가 싫다. 흡연 후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내가 왜 담배를 물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우 ㄱ-

빌어먹을 담배. 이 글을 포스팅하면서도 나는 오늘도 담배를 물고 있다.
젠장. 이 썩을 담배. 이 세상의 모든 담배를 내가 다 피워서 없애버려야겠다.

by 로즈마리아 | 2007/06/03 09:13 | 트랙백 | 덧글(0)
5.18 치킨대학살 사건

2007.05.18 기념일을 맞아 파출소 내에서는 5.18 치킨대학살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5.17일 밤 11:00시경. 근무가 야간인지라 나는 평소처럼 별 일없겠거니 생각하면서 조용히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직원분이 파출소 옆에 있는 밭에 닭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도망쳐 나왔다고 하길래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 닭을 잡아-닭이 비를 맞아서 힘이 없었다. 그래서 잡기도 편했다-닭장을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본 건 말도 안 되는 참살의 현장이었다.

닭장안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닭들과 비록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얼핏 봐도 '나 죽는다'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소리를 내며 닭장안을 혼란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사이로 잔혹한 참살자-통칭 개, 영문 The dog, 포유류과 4족 동물, 식성은 잡식성-이 닭장을 해집고 다니며 닭들을 물어죽이고 있었다.

개는 쫒아내고 닭들을 구조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총 23마리의 닭들 중 살아남은 것은 15마리뿐이었다. 살인자, 아니 살인견들의 잔혹한 참살행위에 내가 근 1주일간 열심히 풀과 사료, 짬등을 주며 키운 닭들은 그 짧은 목숨을 잃고 안타깝게 죽어야만했다. 개 주인을 찾아내지 못했기에 직원분과 나는 근방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해본 결과 그 개주인들을 찾아냈다. 닭장에서 목격된 살인견(...)들은 총 2마리였는데 하얀색 잡종은 70미터정도 떨어져있는 근처 소방서에서 키우던 개 시발 죽여서 보신탕을 해먹어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와 근처 할아버지가 키우던 새끼를 밴 새끼가 모두 보는 앞에서 묶어놓고 패대기를 쳐야 마땅할 암놈이었다.

개주인을 찾아서 보상을 어떻게 할 건지 의논하고 결국은 가해자, 아니 가해견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루기로 했다.(...)

사연도 많고 할 일도 많았던 5.18일. 새벽동안 나는 컴퓨터도 못하고 자지는 더더욱 못하거니와 뜨거운 물에 불린 닭시체에서 주구장창 닭털을 뽑았고, 밤을 새고 난 후 아침조차 잠들지 못하고 오늘 오전 11시부터 삼계탕을 준비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 이 원한은 잊지 않고 근 시일내에 내 손으로 직접 갚아주마. 살계는 용서받지 못할 중범죄라는 걸 목숨을 치뤄 그 녀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줘야겠다.


by 로즈마리아 | 2007/05/19 14:10 | Rosemaria's 일상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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